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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피지 떠난지 6년, 에듀피아 할머니가 간만에 쓰는 유학수기...
작성자 한혜리 날짜 2018-12-27
이메일 wldn1020@gmail.com 조회 428
내용

초등학교 5학년 때 피지 8주 캠프를 갔다오고 나서 큰 변화가 생겼다.

똑같은 영어 학원. 똑같은 원어민 선생님. 똑같은 수업인데
원어민 쌤이 하는 말이 다 들리기 시작했다. 예전엔 그냥 자장가였는데;;
너무 신기해서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영어가 들린다고 자랑했더니
나는 그대로 피지 장기 유학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2006년. 중 1이 되던 해, 동생 손을 잡고 피지 공항에 도착했다.
과연 우린 잘 할 수 있을까...

피지에 도착한 첫 날 뿐만 아니라 가끔씩 한국 향수병이 심하게 도질 때가 있었다.
한국 음식, 한국 향기, 한국에 있는 가족, 한국 옷, 한국에 있는 친구....
그냥 다 포기하고 한국에 가서 살까...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다시 생각해봤다.
한국 고등학교 친구들은 잠도 못자고 야자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나는 이 충동적인 향수병 하나 극복 못하고 징징대고 있나...

그렇게 버티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적응이 되고,
적응이 될 때쯤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씩 커졌다.
하지만 솔직히 마음 한 구석에 '여기 커리큘럼대로 하고 공부만 하면
어떻게든 좋은 대학은 가겠지'라는 무책임적인 안도감이 있었다.

자칫 해이해지고 지루해질 수 있는 느슨한 피지 생활이 무색하게도
매일매일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또 그만큼 프로그램도 잘 짜여있었다.
항상 집에 상주해 계시는 영어와 수학 과외쌤, BBC뉴스 시청 후 토론, 팝송 외우기,
영어 회화 외우기 시험, 악기 수업, 스포츠(테니스, 수영, 배구, 배드민턴, 탁구, 골프, 승마 등) 수업,
봉사활동, 주말 팀 게임 등으로 일주일이 순삭된다.

방학 때 한국에 놀러 가는 것은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나에게 주는 채찍과 당근 같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으니 먹는 당근,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야하니 주는 채찍질.
가기 두세달 전부터 카운트를 하면서 먹고 싶은 한국음식, 가고 싶은 곳을 리스트업 해놓는다.
막상 다 먹지도, 가지고 못할거면서...
그냥 그 리스트를 쓰는 것만으로도 한국에 잠시나마 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한국에서 방학을 보낼때면 늘 먹고, 놀고, 자기 때문에 천국인줄알고 가끔은 왕복이 아니라
편도행을 끊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진짜 한국에 다시 '공부하러 온다고'
생각할때면 왕복티켓임에 감사했다.

그렇게 재밌는 활동들도 즐기면서 공부도 하면서 한국에서 바람도 쐬다보니
어느새 6년이 지났다.

가고 싶은 대학이 생기고, 배우고 싶은 전공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영어어학성적 끌어올리는데 총력을 다했다.
6년 동안 쌓은 내신과 교내외활동, 그리고 영어성적으로
1명 밖에 안 뽑는 디자인 전공에 들어갔다.
당근만 먹다가 고기 한입 문 느낌이였다.

그리고 또 4년 동안 방학도 반납한 채 열심히 인턴, 프로젝트, 과외, 알바, 동아리를
욕심내서 하다보니 취업도 바로 되어 어느새 27을 바라보고 있는
20대 후반의 찌들어있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렇게 한국에 오고 싶어서 디데이까지 셌는데 지금은 너무 피지가 가고싶어서
가끔 항공권 티켓 가격을 혼자 몰래 알아본다.
이제는 돈이 있지만 시간이 없어 가고 싶어도 훌쩍 떠날 수도 없다.
정말 피지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총 7년의 세월들이 훑고 지나간다.
한국에서 똑같이 기계처럼 학원과 집을 오가며 기계처럼 공부했었다면
절대 얻을 수 없었던 결과와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일들...

이제는 피지로 편도행 티켓을 끊고 싶을 정도다.
나한테는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피지섬에서의 7년.
답답하다면 답답할수도 있고, 심심하다면 심심할수도 있는 피지지만
그런 답답함과 심심함조차 너무 그립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다.